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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4후퇴하던 날 by yacho44


- 전철에서 만난 할아버지 이야기 -

 

출근 시간이 지나고 오전 10시쯤 되면 전철이 한가해 지면서 경로우대 노인들이 간간이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옆자리에 앉아서 이야기하시는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어보면 오늘이 1·4후퇴 날이랍니다.  

그날의 회상에 젖은 할아버지는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나는 그때 김포공항 옆 동래에 살았는데 그날은 엄청 추운 날이었어. 아침밥을 먹으려는 데 옆집 아주머니가 우리 집으로 뛰어 들어오며 소리쳤어요. ‘난리가 났대요. 사람들이 피난 가느라 난리예요

나도 놀라서 신작로를 내다보니 군인들의 행렬과 군용트럭, 탱크들이 줄지어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었어. 그 뒤를 이어 하얀 옷 입은 피난민들이 보따리를 이고 지고 우마차에 짐들을 싣고 따라가는 행렬이 길게 이어지고 있었지.”  

우리 식구들도 아침밥을 먹지도 못한 채, 허둥지둥 보따리를 챙겨 식구마다 이고 지고 우마차에 이불과 쌀자루를 싣고 피난길에 나섰지. 나는 그때 7살이었는데 아버지께서 끌고 가는 자전거 뒤에 앉아서 피난민 행렬을 따라갔어.”

우리는 6개월 전 6·25 때 피난을 가지 못해 이번에는 허둥지둥 피난길에 나선 거였죠. 그런데 그 피난길은 죽음의 길이었지. 1시간쯤 걸어갔을까. 군인들 행렬은 보이지 않고 흰옷 입은 피난민들의 행렬만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어요. 그때 하늘에서는 쌕쌕이(제트 엔진 전투기)가 하늘을 선회하더니 피난민들을 향해 기관총 세례를 퍼부었지.” 

나중에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서 전송가라는 영화를 보고 안 이야기지만 우리 피난민 행렬 속에는 중공군들이 소총과 배낭을 흰 행주치마를 둘러 감추고 피난민 속으로 함께 남하하고 있었다는 거였어.”  

유엔군의 폭격이 그치고 나면 피난민들의 시체가 한길 위에 즐비했어요. 처참했지요. 그런데 길옆 도랑에서는 건장한 젊은이들이 행주치마를 둘러쓰며 다시 일어나 남쪽으로 행군을 시작했어요.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들은 중공군들이었죠.”

“6·25전쟁이 일어나고 3개월 후에 유엔군이 개입하여 9·28 수복으로 서울을 탈환하고 압록강까지 수복하여 한국이 통일되는 줄 알았지만 소련의 압력으로 중공군이 인해전술로 개입함으로써 다시 1·4후퇴가 시작된 것이었어.”

 그 후 우리는 시체를 밟고 넘으며 며칠 밤낮을 걸어서 평택까지 갔지만, 그곳 작은 개천을 사이에 두고 유엔군이 피난민의 행렬을 막고 있었어. 피난민들은 그 개천의 다리를 건너려고 아우성치었지만, 우리 어머니께서는 죽어도 집에 가서 죽겠다고 하시며 마차를 끄는 소고삐를 잡아채며 돌아서셨지.”  

집에 돌아와 보니 좌파 집안들은 피난을 가지 않았고 피난 갔다 돌아온 사람들을 질시하는 눈초리로 경계했었지. 그 후 6개월 정도 지나서 다시 유엔군이 서울을 수복했고 그 후 2년 동안 전쟁이 지속하면서 수많은 사람이 죽었어.”  

그 할아버지 말씀을 듣고 집에 와서 6·25전쟁 때 희생된 사람들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남한 사상자 130만 명, 미군 사상자 15만 명, 그 외 유엔군 사상자 2만 명, 북한군 사상자 62만 명, 중공군 사상자 92만 명입니다.  

그러니 한국전쟁의 피해자는 한국과 중국, 북한, 미국의 순입니다. 이렇게 피를 많이 흘린 나라들이 쉽게 한반도의 연고권을 포기하리라 생각하는 것은 오산인 것 같습니다.


덧글

  • 광주사태미국책임인가 2019/01/05 00:17 # 답글

    민간인 학살을 중국군이 끼어있어서라는 괴상한 변명은 오늘 처음 들어봅니다. 미국의 양민학살은 피카소의 그림에도 나오죠.
  • 광주사태미국책임인가 2019/01/05 12:25 #

    보도연맹학살은 국군이 머물렀던 지역인 영남지방에 집중되어 있다. 국군이 일찍 후퇴했던 지역은 피해가 없었다.
    http://qindex.info/Q/d.php?c=2019
  • 서울사람 2019/01/05 10:04 # 삭제 답글

    경상도 사람들이나 전라도 사람들은 625전쟁을 몸으로 겪어보지 못해 잘모르고
    오늘 처음들어보는 얘기도 많을 거예요.
    1950년 6월25일 기차타고 부산까지 피난가서 휴전되고 서울로 온 사람들도 전쟁을 잘 모를 거예요.
    힘없고 빽없어 기차타지 못해 피란가지 못한 중부지방의 사람들이 엄청 죽었지요.
    1950년 6월 북한에서 처내려오니 좌익운동하던 학생들 좌파조직원들이 군경가족, 지주가족들을 잡아다가 죽였지요.
    928수복때는 북한에 협조한 부역자들 가족들을 잡아다가 엄청 죽였지요.
    1.4후퇴때는 또 국방군에 협조하고 입대한 가족들을 죽였지요 또 폭격맞아 죽은 사람들도 많구요
    경상도 전라도 사람들은 복받은 사람들입니다.
  • 광주사태미국책임인가 2019/01/05 12:20 #

    1963-10-17 윤보선 
    "부산과 대구는 6.25당시 후퇴하지 않은 곳으로 빨갱이가 많고 인민군이 침입하면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http://qindex.info/Q/d.php?c=2019#2043
  • 광주사태미국책임인가 2019/01/05 12:32 #

    빨갱이들에 의한 학살은 전라남도가 가장 컸습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퇴로가 막힌 인민군들이 대량학살을 저지르고 태백산맥 쪽으로 달아났죠.
  • 광주사태미국책임인가 2019/01/05 12:36 #

    피란민들에 대한 학살은 노근리 사건에서 보듯이 당연히 미군에 의한 것이죠. 황해도 신천학살도 미군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강정구 교수는 미국의 개입이 없었다면 10만 이내의 희생을 치르고 통일이 되었을 거라고 추정합니다.
  • yacho44 2019/01/05 19:26 # 답글

    1950년대는 미쏘냉전시대였습니다. 그러니 우리나라가 잘되려면 경제적으로 잘 살아야 합니다. 부강한 나라가 되어야 일본이나 중국같이 큰소리치며 살지요. 베트남도 요즘 잘사는 나라라네요. 베네주엘라 같이 거지가 많으면 길거리에서 죽는 국민이 많게 마련입니다.
  • 광주사태미국책임인가 2019/01/07 11:46 #

    박정희 이전만 놓고 보면 공산화 되는 게 맞습니다.
    이남은 거지와 미군위안부가 우글대고 있었고 이북은 지상낙원을 자처할 만큼 잘 살았으니까요.
    박정희의 경제개발도 자유시장 경제와는 좀 거리가 있었습니다. 국가사회주의였습니다.
    물론 지금은 자유시장 경제에 충실할 수 있게 되었죠.
  • 밀성박씨 2019/01/07 18:30 # 삭제 답글

    맞습니다. 지금의 한국 경제 발전은 박정희 덕입니다. 아니면 공산화 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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