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포토로그


독도는 한국땅, 대마도도 한국땅 (4) by yacho44


-조선의 관직을 갖은 대마도주(島主)는 일본이 지배하지 못했다.-


일본은 159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일본을 통일하기 전까지는 각 지방의 사무라이가 그 지역을 다스렸습니다. 따라서 지리상으로 한반도와 가까운 대마도도 가야, 통일신라, 고려, 조선왕조의 관직을 갖은 도주(島主)가 절대권력을 가지고 대마도를 다스렸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대마도에 성(城)을 쌓으려 해도 도주(島主)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지요.

하는 수 없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부하 고니시 유키나가 (小西行長)의 딸 '고니카 마리아'와 대마도 도주(島主) 소 요시토시(宗義智)와 정략결혼을 하도록 하여 대마도에 성​(淸水山城)도 쌓고 임진왜란 때 조선의 지리를 잘 아는 대마도 도주(島主)를 선봉에 세웁니다.

임진왜란이 일본의 패망으로 끝나고 160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일본은 도쿠가와 이에야스 (德川家康)의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맞서 싸우던 고니시 유키나가 (小西行長)는 패망하여 죽습니다.
이때 대마도 도주(島主) 소 요시토시(宗義智)는 대마도 주민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하여 고니시 유키나가 (小西行長)의 딸 고니카 마리아 와 이혼하고 나가사키로 보내 죽게 합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조선과 교린(交隣)을 재개하여 조선의 통신사 파견을 성사(成事)시키고 대마도를 거치는 조선 통신사를 극진히 대접하여 상전(上典)으로 모십니다.

그 후, 대마도에서는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딸 '고니카 마리아'의 유령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자자하자, 대마도주 '소 요시토시(宗義智)'의 죽은 아내 '고니카 마리아' 와 그 아들 '소 요시나리(宗義成)'의 신사를 만들어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래도 일본 본토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대마도주 '소 요시토시(宗義智)'를 어쩌지 못했습니다. 대마도 이즈하라 시내에 있는 팔번궁 신사 왼편의 신사가 금궁신사(今宮神社: 이마미야 신사)로 고니카 마리아의 신사입니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