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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꿈 꾸며 죽은 늙은이(夢死老)다 by yacho44

강원도 강릉 경포대로 가는 길, 경포호수가 바라보이는 좌측으로 선교장이 있고 그 옆에 김시습 기념관이 있다.

선교장 입장료는 3천 원이지만 김시습기념관의 입장료는 무료이다. 100평 정도 되는 아담한 전통 한옥 한 채가 기념관의 전부다.


매월당 김시습은 조선 세종 17년 서울 종로구 명륜동(성균관 북쪽 泮宮里)에서 태어났지만, 본관이 강릉이고 모친(선사 장씨)이 돌아가신 후 3년간 강릉에서 시묘살이를 한 인연으로 강릉의 유지들과 강릉김씨의 각 종파들이 십시일반으로 추렴(出斂)하여 강릉에 김시습의 기념관을 세웠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김시습의 작품서적과 유물전시실이 있고 김시습의 생애와 족보를 소개하는 방이 있다. 강릉김씨의 시조 주원은 신라 김춘추(태종무열왕)의 6대손이며 김시습은 김주원의 22대손이다. 또 주원의 36대손이 이상(李箱) 김해경(金海卿)이다. 강릉김씨의 각 계파에서는 시제(時祭) 때 반듯이 매월당 김시습에게 제사를 지낸다. 매월당은 5세에 세종대왕 앞에 나가 즉흥시를 지을 정도로 신동(神童)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그가 19세 때 수양대군이 단종을 폐하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과거공부를 하던 책을 불사르고 눈물로 세월을 보내다가 미친척 하며 방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주 미친것은 아니었다. 22세 때 사육신이 무참히 처형되어 한강가에 버려지자 그는 목숨을 걸고 그들의 시신을 수습하여 강을 건너 노량진 언덕에 매장한다.


다음 방으로 들어가면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계보를 소개하는 곳이다. 그는 전국을 방랑하면서도 글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수백 수의 시를 지었으며 수많은 저서를 남겼다. 정몽주, 이색, 길재, 권근 등의 유학(儒學)사상을 이어받아 서경덕, 이이 등이 이어받게 함으로써 근대 조선의 실학자들이 대거 출현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 다음 방에는 김시습의 문학세계를 소개하는 방이다. 특히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소개하는 방에서는 홀로그램을 상영한다. 금오신화는 한국 최초의 한문 소설로 김시습의 사상이 잘 나타나 있는 소설이다. 그는 현실 정치에 참여하지 않으면서도 현실을 떠나서는 존재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죽어서도 현실과 전혀 관계없는 동떨어진 곳으로 간다는 것은 허무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는 유(儒), 불(佛), 선(仙)의 사상을 섭렵(涉獵)하면서도 기복(祈福)신앙을 배척하였고 무속(巫俗)신앙의 귀신(鬼神)을 부정하였다.  www.silver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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