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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죽음으로써 모든 것이 끝나버리는 거라면, 그것은 너무나도 허무한 일이었다. by yacho44

“강원도 횡성에는 언제 가실 거예요?”

준석의 옆에서 말없이 서울을 내려다보고 있던 아내가 준석에게 물었다.

“으~ㅇ, 그래, 거길 가보려던 참이었지!“


준석이 대답하며 다시 계기판을 응시했다.

<지도>라는 버튼을 누르니까 화면에 지구의 북반구 지도가 나왔다. 다시 <목표>버튼을 누르고 화살표를 한국 강원도 횡성군 쪽에 계속 조준하니 횡성 현천리 지도가 확대되어 나타났다. 화살표를 현천리 우리 산에 조준하였다. <속도>계기판에 시속 100km가 나오도록 맞추는 한편, <출발>버튼을 눌렀다. 비행체는 다시 동쪽을 향해 쾌적하게 움직여 나아갔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도로망은 옛날보다 더 복잡하게 많아졌으나 길의 폭은 그대로였다. 먼 거리의 이동은 대개 비행기를 이용하기 때문일 거라고 준석은 생각했다. 예나 지금이나 교외의 산야는 아름답고 신비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에서 그 악마적인 요소만 없애버린다면 그것이 바로 천사들의 천국일 거라고 준석은 생각했다.


준석은 다시 <빨리>라는 버튼을 눌렀다. 비행체는 순식간에 현천리 상공에 도착했고, 공중에 정지하여 멈춰 섰다. 우리 산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영동고속도로와 국도는 모두 4차선으로 확장이 되어 있었고 국도에서부터 산으로 들어가는 좁은 길도 2차선으로 포장이 된 채 우리 산 옆을 지나 고개 넘어 숲 속으로 이어져 있었다. 길가에 있던 서너 채의 집들은 모두 별장 같은 농가로 변해 있었고, 우리 산에는 지금 한창 복숭아꽃이 울긋불긋 피어 있어서 환해 보였다. 그 복사꽃 사이사이에는 제법 많은 집이 흩어져 있었다.


준석의 옆에 앉아 우리들의 산을 내려다 보고 있던 아내가 문득 입을 열었다.

“저 가운데 골짜기 우측의 동산도 우리 남수가 사들였어요.”

“그래?! 그 산은 내가 돈만 되면 언제든지 사려고 하던 산 이었는데…. 정말 잘 됐구나!”

준석은 어린애같이 기뻐했다.


“이제 내려가 보셔야죠?!”

아내의 말에 준석은 <하강>버튼을 눌렀다. 비행체는 천천히 밑으로 내려가 복사꽃이 만발한 마당 한가운데 사뿐히 내려앉았으나 누구 하나 내다보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들의 눈에 비행체가 보일 리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리라.


“이건 남수가 거처하는 집이에요.”

마당 정면에, 아담한 집 한 채를 가리키며 아내가 말을 이었다.

“식구들은 서울 도심에서 살고, 남수는 주로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어요. 주말이면 식구들이 교대로 이곳을 방문하곤 하지만요…. 나는 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자주 이곳에 와서 머물곤 했죠. 특히 남수가 쓰는 서재에 와서 책을 읽거나 4군자를 그리곤 했죠.”


“서재라구?. 거길 가 보구 싶구만…?”

둘이는 현관을 지나 서재로 들어갔다. 남쪽으로 커다란 유리창이 하나 나 있어서 산아래 전망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가 있었다. 방안은 밝고 환했다. 면적에 구애받지 않는 시골이라 방이 꽤 넓은데도 사방의 벽은 책장으로 꽉 차 있었다.


“아니?. 이 고서적들은 낯익은 책들인데?”

“그 책들은 우리 남수가 가장 아끼는 당신의 유품이에요. 생전에 당신이 애지중지하던 그 책들이죠. 당신의 전공서적들, 또 부전공 책들, 심령과학에 관한 책들, 선도(仙道)에 관한 책들, 최면술에 관한 서적들, 우주 천문 물리학에 관한 서적들..또 말년에는 농사(農事)와 건강에 관한 책들을 많이 보셨잖아요? 저쪽에 있는 것들은 내가 생전에 쓰던 붓과 벼루 연적 먹들이에요.”


아내의 설명을 들으며 준석은 감회가 새로운 듯 그 고서적들을 어루만졌다.

“그래…. 나는 그때 그 책들 속에서 어떤 해답을 얻으려고 노력했었지…. 나는 어려서부터 이상하게 [죽음]을 무척이나 두려워했었다. 1940년대, 1950년대의 그 시절에, 내 주위에서는 죽는 사람들이 많았다. 전쟁에 나가서 죽는 사람들, 징용에 끌려가 죽는 사람들, 전염병으로 죽는 사람들, 물에 빠져 죽는 사람들, 굶어 죽는 사람들…. 죽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특히 내가 자라난 시골에서는 어린애들이 병으로 죽는 일이 너무 흔했다. 우리 어머니의 경우만 해도 9남매를 낳으셔서 4남매만을 겨우 끝까지 살리셨으니 말이다.”


준석은 계속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한 환경 탓인지 어쩐지, 내가 철이 나면서부터는 모든 생명이 유한(有限)하다는 데 대해, 심한 불만을 느꼈었지…. 그것은 너무나도 허무한 일이었다. 죽음으로서 모든 것이 끝나버리는 거라면, 무엇하러 사람들은 그렇게 힘들여 살아갈 필요가 있는 것일까?”


“그래서 그때 나는 책을 구해서 읽기 시작했었지…. 학교 공부와 또 다른 의미의 책들을…. 살아 있다는 것은 결국 무엇일까? 그건 의식(意識)이 살아있다는 것일 뿐, 의식을 잃고 깨어나지 못하면 결국 죽어 버리는 것 아닌가?, 그리하여 육체마저도 싸늘하게 식어버리는 것인 것을….”


“그런데 책에서는 그 의식세계 밑에 무의식의 세계가 있다고 했다. 무의식의 세계는 의식 세계보다도 수십 배 더 넓고 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고 했다. 오히려 사람마다의 의식 세계는 그 무의식 세계의 극히 일부(一部)일 뿐이라고 했다.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이었다. 그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증명되었다. 초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증명, 또는 심령 과학적 증명 등등…. 그리고 또 사람마다의 그 무의식 세계는 서로 다른 영역(領域)이 아니고 같은 영역으로, 통해 있다고 했다. 오히려 그곳은 의식세계의 고향이라고까지 했다. 무의식 세계에서 의식세계로 잠시 왔다가 돌아가는 것이 죽음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내가 의식이 있어서 살아 있다거나 또 죽어서 의식이 없어졌다 하더라도, 그 나는 항상 무의식 세계에 머무를 수 있는 내가 아닌가?. 그러면 그 무의식 세계란 어떠한 상태일까?. 또 거기 머물고 있는 사람들은 어떠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일까? 나는 그 해답을 얻으려고 사색도 하고, 이것저것 여러 방면의 책들을 많이 읽었었지….”


말없이 회상(回想)에 잠겨 있는 준석을 바라보고 있던 아내가 준석의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말참견을 했다.

“그곳을 기독교에서는 천당이라 하였고, 불교에서는 극락세계라 한다고 당신이 말했죠. 그 외에, 사람마다 여러 가지 다른 의견이 많이 있다고 하셨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그런 곳은 존재하지도 않고 생각할 필요도 없는, 낭비적인 논쟁이라고 하였다면서요?. 그리고 그곳을 믿는 사람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율법(律法)이 있어서 거기에 따르지 못하는 사람들은 불편한 무의식 세계인 지옥으로 간다고 하였다지요?”


아내는 잠시 숨을 돌리고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러나 당신은 당신의 결론을 내게 말해 주었어요. 당신이 믿는 그곳은, 이 세상 사람들의 상상(想像)을 크게 뛰어넘는 불가사의한 곳이 결코 아닐 거라고…. 왜냐하면, 우리가 이 세상에 오기 전의 기억을 갖고 있지 못한 이상, 그 천국이라고 하는 곳이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이 세상의 환경과 생각을 그대로 가지고 갈 수가 없는 엉뚱한 곳이라면, 그러한 그 천국의 불가사의는,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일 거라고 하셨지요. 그렇게 [특별한 천국]은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무의미하게 하고, 허무하게 만들기는 마찬가지일 것이기 때문이라고….”


“그래…. 이승의 삶이 저승의 생활과 전혀 별개의 것이라면 이승에서 바동대며 살고 있는 그 자체가 허무한 것이기는 마찬가지일 거라고 말했었지….”


“그래서 사람마다, 이 세상에서 경험하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염원(念願)한 대로 그들의 천국에 가서도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하셨죠? 이 세상에서 생활하고 생각하고 있는 기억들은 어찌 보면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의 세상(무의식 세계)에서 가지고 온 것인지도 모른다고 하셨죠….”


<다음은> <6> 노벨 문학상을 받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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