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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族의 고향이 이 정도일 줄이야..., by yacho44

 샨시셩(山西省) 박물관 관람


중국 문명이 태동(胎動)한 황허(黃河) 북부지방을 보면, 베이징(北京)에서 시작된 타이항(太行)산맥이 황허(黃河) 중류의 뤄양(洛阳)까지 길게 뻗어 있다. 이 산맥은 수억 년 동안 융기와 침식을 거듭하여 동쪽은 가파른 절벽을 이루고 있다.


그 밑으로 기름진 화베이(华北)평야가 산둥(山东)반도까지 끝없이 펼쳐져 있고 타이항(太行)산맥 서쪽은 평균 고도 800m의 황토(荒土) 고원(高原)이 서쪽의 뤼량(吕梁)산맥까지 넓게 퍼져 있다.

그 고원 가운데로 펀허(汾河)가 흐르고 있으나 물이 거의 말라있다. 이곳이 중국인들이 자랑하는 한족(漢族)의 발원지(發源地), 샨시셩(山西省)이다.


이곳은 강우량이 적고 건조하여 흙먼지가 많이 날린다. 풀잎, 나뭇잎에 흙먼지가 뽀얗게 묻어 있다. 사람도 옷도 먼지투성이기에 목욕도 자주 하지 않고 세수도 잘 안 한다. 그래서 한족(漢族)들은 전통적으로 때가 많고 지저분하다고 한다.


중국 샨시셩(山西省)관광의 시작은 샨시셩(山西省)의 성도 타이위안(太原)으로부터 시작된다. 타이위안(太原)은 우리나라 인천 공항에서 비행기로 2시간 거리에 있어서 일본 북부 센다이(仙臺)공항에 가는 거리와 비슷하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샨시(山西)지방은 말 그대로 황무지였다. 한족(漢族)들은 산꼭대기까지 계단식으로 농경지를 개간하여 수많은 인구를 먹여 살려야 했다. 비옥한 동쪽의 화베이(华北)평야를 놔두고 왜 한족(漢族)들은 이 척박(瘠薄)한 땅에 둥지를 틀었을까?


그 해답은 타이위안(太原) 시에 있는 샨시셩(山西省) 박물관을 관람할 때, 우리를 안내한 안내자(guide)의 설명에서 나온다. 이 박물관은 4층으로 지어진 현대식 건물로 원시 석기시대의 생활상으로부터 청동기시대 춘추전국시대의 진(晋)나라, 당(唐), 명, 청나라까지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한족(漢族)들의 원래 고향은 중국 남쪽의 양즈쟝(扬子江)유역이다. 1만 년 전 빙하기가 끝나고 신석기시대로 접어들면서 농경시대가 열렸을 때, 그들은 위생적인 직화요리 덕택으로 영아(嬰兒)사망률 0%를 자랑하면서 인구가 폭발(爆發)적으로 늘어났다. 따라서 그들 중 일부는 온화(溫和)해지는 기후를 따라 북쪽으로 이동한다.


그러나 타이항(太行)산맥 동쪽, 황허(黃河) 유역의 기름진 화베이(华北)평야에는 강성한 배달민족(韓民族)이 선진 청동기 문화를 꽃피우고 있었다. 그 때문에 미개(未開)한 한족(漢族)은 할 수 없이 타이항 산맥 서쪽 메마른 황토고원 샨시(山西)지방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척박한 땅에서 나는 식량으로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들은 물이 넘쳐흐르듯 동쪽의 타이항(太行)산맥을 넘어 배달민족의 땅에 들어가 노략질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부터 한족(漢族)과 배달민족(韓民族)이 중국 대륙에서 벌이는 투쟁의 역사가 시작된다. 두 민족 간 최초의 충돌은 황제(黃帝)와 치우천황(蚩尤天皇)의 탁록대전(涿鹿大戰)이다.

이 전쟁이 10년이나 계속되었고 인해전술(人海戰術)에 능한, 한족(漢族)의 황제(黃帝)가 승리하여 한족(漢族)이 중국을 지배(支配)한다.

그러나 그 후, 배달민족의 상(商)나라, 은(殷)나라, 제(濟)나라, 노(魯), 한(韓), 연(延), 북위(北魏), 금(金), 원(元), 청(淸)나라 등은 한족(漢族)을 제압(制壓)하였다. 그때마다 한족(漢族)은 이 샨시(山西)지방의 황무지로 들어와 힘을 길렀고 재기(再起)하였다.


이곳 샨시(山西)지방은 10월 3일인데도 아침저녁으로 쌀쌀하여 우리나라 날씨와 비슷하다. 우리를 안내한 안내자(guide)의 말에 의하면 이곳은 항상 뿌연 안개가 끼어 있고 1년에 1달 정도만 햇빛을 볼 수 있다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날씨가 매우 좋았다.   www.silver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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