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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태산 by yacho44

 

- 태산은 배달민족이 제사지내던 곳 -


중국의 산둥반도(山東半島)는 한반도 장산곶에서 200Km의 거리이고 산둥반도 남쪽의 칭다오(靑島)는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1시간 만에 도착한다. 칭다오에는 한인타운이 있을 정도로 한국인이 많이 산다. 통일신라 때에도 신라방이라는 신라인의 거주지가 있었다고 기록으로 남겨져 있지만, 그 이전 백제, 고조선 때부터 이곳은 한국인의 거주지였다. 기후도 한국과 비슷하다.


칭다오에서 버스로 4시간을 달려가면 타이안(泰安)의 타이산(泰山: 1,545m)이 나온다. 광대(廣大)한 화북평야 중심에 우뚝 서 있는 이 산은 생각 외로 계곡이 깊다. 산 밑 주차장에서 셔틀버스로 산 중턱까지 올라가고 거기서 다시 산 9부 능선까지 케이블카로 올라간다. 산 위에는 도교사원들도 많고 상가(商街)들도 많아 작은 고을을 형성하고 있다. 7월 하순으로 불볕더위가 기승인데도 타이산(泰山) 꼭대기에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야사(野史) 환단고기(桓檀古記)에 의하면 우리 한(韓)민족은 빙하기 때 시베리아에서 이곳 중국의 화북평야까지 내려와 나라를 세운다. (본보 2011년 07월 31일 자 기사 ‘빼앗긴 갑골문자’ 참조) 그리고 환 국(기원전 7197-3897년), 배달국(기원전 3897-2381년), 고조선(기원전 2333-108년)의 제왕들은 대대로 이곳 태산에서 천신제(天神祭)를 지냈다.


한족(漢族)들도 그들의 황제(黃帝)가 배달국의 제14대 치우천황(기원전 2707년)을 중국 산시 성(山西省) 기주(冀州)에서 물리쳤다고 하는 것을 보면 그 당시에는 태항산맥을 중심으로 한 화북평야 일대가 배달(韓)민족의 생활 터전이었던 것이 확실하다. 그러던 것이 양쯔쟝(楊子江) 유역에 거주하던 한족(漢族)의 인해전술(人海戰術)에 밀려 만주지방으로 이주하게 되었지만 지금도 산둥 성 지방의 주민 중에는 체격이 큰 한(韓)민족의 후예들이 많이 살고 있다.


직화(直火)요리의 위생적인 식습관(食習慣) 덕분에 인구가 팽창(膨脹)한 한족(漢族)은 이 화북평야의 산둥지방을 점령한 후에도 한(韓)민족의 선진(先進)문화를 철저히 받아들였다. 그들은 갑골문자를 배워서 익히는 것은 물론, 태산에서 천신제 올리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춘추 전국시대는 물론, 진시황과 당나라를 거쳐 청나라 때까지도 그렇게 지켜왔다. 산 정상(頂上)에는 역대 황제들이 다녀가면서 남겨놓은 글귀들이 엄청나게 많다.


역사(歷史)는 승자(勝者)가 기록하는 것으로 인해전술에 능한 한족(漢族)은 이 화북평야의 황허(黃河) 문명을 그들 고유의 것으로 왜곡하여 역사서(歷史書)에 기록한다. 그리고 고조선을 만주와 한반도에서 발생한 작은 나라로 기록한다. 또 고조선과 고구려가 그들의 제후국(諸侯國)이라 주장하는 동북공정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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