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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지성, 만해 한용운 by yacho44

‘님의 침묵’으로 우리의 심금을 울렸던 만해 한용운 선생의 생가를 찾아가려면 서해안고속도로 홍성IC를 나가서 서해안쪽으로 가다가 얼마안가 좌측으로 이정표가 보입니다. 선생은 1879년,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서 태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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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유년시절은 권력자들의 부정부패가 극에 달하여 나라는 망해가고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조선의 식민화 계획을 착착 실행해가고 있던 혼란한 시기였습니다. 드디어 그는 이러한 혼탁한 세상을 등지고 1904년 강원도 백담사로 출가하였지만 조국을 향한 그의 사랑은 속세를 완전히 떠나지 못하고 불교의 사회참여와 불교의 개혁을 역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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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운동 때는 33인의 민족대표 중 한사람으로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독립운동이 과격한 폭력과 파괴와 자해행위로 이어지는 것을 경계하여 합법적인 투쟁을 누누이 역설합니다.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이러한 그의 혜안(慧眼)은 그가 독립선언서에 추가한 공약삼장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인들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그를 존경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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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또 1926년에 시집 ‘님의침묵’을 출판, 일제치하에서의 저항문학에 앞장섰습니다. 이는 어느 정파의 집단 이기주의를 위한 저항이 아니라, 한민족(韓民族)의 혼을 말살하려는 일제의 폭정에 항거하려는 범민족적인 거사였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사람들은 그를 진정한 민족의 지도자 ‘행동하는 지성(知性)’으로 추앙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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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민족의 해방을 불과 1년 남겨놓은 1944년 6월 29일 65세를 일기로 입적(入寂)하였고 1962년에는 건국공로훈장이 추서되었습니다. 그의 생가터 일원에는 그의 사당과 생가, 만해체험관, 민족시비공원이 있어서 가족나들이 공원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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